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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RollingTea 구르다

밝은 보듬이들을 만나다


시대를 담다 : 한국·중국·일본의 차 마시는 그릇_특별편






김종훈, 숨별 보듬이, 8×10cm

그릇을 색깔로 구분하기 시작한 때가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흰 것을 백자라 부르고 그 전통이 한 번 일었다 시들어버린 오늘, 이 그릇이 정말 백자라는 것은 알겠다. 문화권에 따라, 역사와 관계에 따라 사람은 색깔이 달리 해석한다. 밝다 혹은 희다가 품을 범주가 얼마나 넓겠냐마는 나는 이 보듬이의 유백(乳白)이 시절을 관통하는 우리들의 하양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유태근, 청화포도문 보듬이, 9.9×11.5cm

포도를 문양으로 그려 넣은 역사는 오래되었다. 한 가지에 많은 열매를 맺는 식물이니 풍요와 다산을 상징했다. 우리나라도 매한가지였다. 포도 문양은 양반에서 서민까지 두루 사랑하는 그림이었다. 왜란과 호란을 지나며 무너진 사회의 규율이 누군가에게는 굶주림을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었을 때, 포도 문양은 누군가에게는 향수를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주었다. 귀족의 상징이었던 백자 흙에 청아한 솜씨로 그려 넣은 포도 문양, 그 아래로 사정없이 투박하게 쳐내 버린 굽이 아슬아슬한 아이러니의 균형을 만들며 높은 완성도의 보듬이로 탄생했다.







심재용, 마애불 보듬이, 9.5×9.9cm

심재용 작가를 사랑하는 이들은 그의 손길에서 빚어낸 흙의 살결을 좋아한다. 탄탄한 육체, 그 위로 흐르는 나무껍질과 강철의 질감에 매료된다. 마치 바로크 시대의 성당 외벽의 주제처럼 비어있는 공간 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다양한 무늬와 손가락 끝마디의 흔적들이 도자기란 평면이 아닌 입체의 예술임을 실감하게 한다. 전면에 새긴 큼지막한 불상의 얼굴이 사랑스럽다면 그쪽을, 때때로 죄를 지어 그 얼굴을 마주하기 버겁다면 살짝 뒤로 돌려 흔들리는 어지러움의 정취를 감상해도 좋다.






임만재, 숲새미 보듬이, 8.9×9.4cm

세상에 없던 보듬이가 또 한 번 세상에 없던 유약을 만나 모습을 드러냈다. 예술에 조예가 깊은 당신이라도 감히 이 유약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아맞히기는 어려울 것이다. 거기에 더해 마치 원시적 주술이라도 걸린 듯 힘이 넘치는 곡선에 숲속 옹달샘에 떨어진 물방울 하나로 퍼져나가는 둥근 파문이 겹쳐 평면이었을 법한 그림 한 폭을 입체로 완성했다. 백자(白子)를 백자(百子)로 확장한다면 단연 그 묘한 빛깔과 선의 힘으로 으뜸에 설 가능성을 엿볼 만하다. 유약이 궁금한가? 이곳으로 와 나에게 물어보시길.







허경혜, 나한 보듬이, 8.5×9.5cm

나한은 본래 인도를 떠돌던 범죄자들이었다. 힌두가 해결하지 못하고 족족 참수하는 것으로 대응하기만 하던 이들을 석가모니는 한데 불러 모아 비폭력과 깨달음의 수행으로 각자(覺者)를 만들었다. 오백 나한을 보듬이에 새긴다는 것은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긴 작가에게 큰 도전이자 새 삶을 향한 묵언의 수행과도 같다. 뚜렷한 얼굴의 형태 없이 슬쩍 스쳐 지나가는 표정만이 은근히 깃들었다. 정면보다 측면에서 더욱 살아나는 이 묘한 주제가 감상하는 이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심영란, 청화 보듬이, 8×10.4cm

쇠는 흙에서 나왔다. 그런데 흙에 감추어져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들을 서로 뭉쳐 불에 넣어 구우면 숨어 있던 쇠가 흙 위에 녹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심영란 작가는 흙과 쇠가 서로 맺은 다섯 가지 비밀 이야기를 꿈에서 엿들은 사람이다. 보듬이 위에 펼쳐진 그림은 그림이되 그림이 아니다. 회화적이지만 회화는 아니다. 그녀는 붓을 들어 그를 그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프랙탈, 비선형 그 어떤 용어를 가져다 붙여도 성에 차지 않아 보인다. 분방하고 동시에 순수하다. 그래서 재미있는 그릇이 되었다.






장기덕, 청봉 보듬이, 8×10.5cm

대를 이어 도자기를 구운 집안의 자손이자 명인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사람이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심지어 자신의 창조물도 아닌 것에 손을 대기란 쉽지 않다. 아직 많은 것이 가다듬어지지 않았고 무엇 하나 확실한 것도 없지만 반대로 정말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작가라는 점이 갓 수개월의 작업 하나에도 드러난다. 공자가 말하기로 진실로 깨달음에 솔직하고 순수한 자는 지나가던 아이에게도 허리를 굽히고 묻는다고 했다. 아집과 욕심으로 마음이 닫혀 있던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보듬이 한 점이라 더욱더 값지다.






정갑용, 새뜻 보듬이, 8×10cm

창안자이신 아버지는 정갑용 작가의 연습작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디선가 본 듯한 저 빛깔.” 이제는 실전되어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영청 백자의 색깔을 이르는 말이다. 박물관에 가도 시와 운이 맞아야 겨우 한 번 볼 수 있다는 영청 백의 빛깔이 언뜻 묻어나는 이 신묘한 기연에 대해 우리는 여러 가지 말을 할 수 있지만, 작가는 스스로 당부한다. 아직은 이르다. 하지만 언제가 될지 궁금하다. 구할 구푼의 판에 박힌 백자들 사이에서 숨별 백자에 버금가는 새로운 오늘날의 백자 하나가 등장할지, 아닐지.






글_ 정 다 인

사진_ 정 다 정







빛 품어 밝은 밝보듬이전 : 두 번째 보듬이 展


기간 : 2019년 5월 19일 ~ 25일

장소 : 갤러리 차와문화, 서울 종로구 계동길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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