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쉰세 번째 장
실개천 둑길로 새벽 산책 십여 년.
해마다 대한 즈음 실개천에는 청둥오리 떼가 와서 놀다가
내가 그 곁을 지날 적마다 울음 울며 날아가곤 했는데
나는 늘 그저 그러려니 했습니다.
어느 새벽, 큰 울음 내며 다시 날아오르는 새들 날갯짓에
비로소 나는 내 발 소리가
미명의 고요를 깨트리는 순간을 맞닥뜨립니다.
무심코 함부로 내딛어온 어리석음을 마주합니다.
여든 문턱 보이는 이 나이토록 내 삶이란,
기껏 이런 모습이었던가요.
청둥오리들은 이미 저만치 서쪽 하늘로 날아가고
나는 내 안을 응시하며 걷고,
걷습니다.
2024년 1월 20일,
정 동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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