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일흔두 번째 번째 장
이승 다 태워버릴 듯 지난여름 불덩이 볕살에
산에서 데려와 서른 해 넘게 뜰에 살던 뻐꾹나리가
꽃망울 맺어보지도 못한 채 꺼멓게 말라버린
스산한 주검 위로 가을이 서성입니다.
그저 난 해마다 칠월이 오면
귀하디귀한 그 자태 또 볼 수 있다는
재미에 빠져 살았습니다.
죽은 뒤에야 산속 그늘이 제 고향인 줄 알고도
지구온난화, 생태계 파괴 때문이라는 변명을 생각했습니다.
삼십 년 세월, 강제로 이주당한 슬픔 속에서도
고귀한 자태와 색깔과 향기를 빚어
욕심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나를 향해
내려놓아라, 다 내려놓거라 법문한 뻐꾹나리,
찬 서리 내리시는 날 뒤에 숨어서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는 고해합니다.
2024년 10월 23일,
정 동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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