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사람과 이야기 04
: 목은 이색 牧隱 李穡
산은 그윽하게 깊고 또 깊고
山之幽兮深深
빽빽이 들어 찬 숲은 아득하고도 넓어
鬱蕭森兮潭潭
누런 고니도 그 산마루는 지나가지 못하네
黃鵠尙不得過其顚兮
깎아지른 듯 우뚝우뚝 뾰족한 바위들
截然屹立乎巖
저 아득히 그늘진 산속은
邃莫兮山之陰
서리며 이슬에 젖어 있다네
曖霜露兮濡霑
...
샘물이 나는 듯 흘러서 언덕에 쏟아지고
淙飛泉以瀉于崖兮
물은 폐부를 맑게 하고 맛은 달구나
淸肺腑而味甘
두 손으로 샘물을 움켜 뜨니
之手中兮
얼음같이 찬물에 쇠진한 내 모습 비치네
寒照衰顔以是監
쉬면서 흐르는 물소리 듣고 있자니
爰流以聽其聲兮
옥 패물들이 부딪치며 나는 소리 같네
佩之相參
부싯돌 쳐 불을 피워 차를 달이니
將敲火而煎茶兮
육우 선생 입맛도 별거 아니구먼
鄙陸羽之口
부러워라 (이곳은) 반곡 가까이 있고
盤谷之可㳂兮
더구나 (한유의) 그 글은 나의 길잡이라네
其文爲我之指南
천년 만에 도통을 이었으니
續道 於千載兮
그 계곡물을 염계라 했다네
乃命其溪曰濂
...
목은 이색, <山中辭>
세종은 고려말의 삼은(三隱) 중 첫째로 목은(牧隱) 이색을 꼽으며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이색은 학문이 뛰어나지만 절의를 지키지 못했고, 관리로서의 재능이 낮으며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의 정치 상황에 대한 대처가 후대에서 보았을 때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는 공민왕을 도와 개혁운동에 앞장섰지만 근본적으로 신진사대부들과 같은 배를 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적으로 권신 이인임과 대립관계였지만 두루뭉술하게 잘 지내는 편이었고, 불교계를 배척하지도 않았다. 그는 개인의 땅(私田)을 줄여 나라의 땅(公田)으로 귀속시키는 법안에 반대하며 제자들과 갈등을 빚었고, 후에는 창왕 옹립과 폐위 사건에서도 그들과 노선을 달리하며 정계에서 밀려났다.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리는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이색을 신진사대부로 배웠지만 사실 그는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대쪽같은 성품과 빛나는 학문, 한족들을 제치고 중국에서 이룬 전시(殿試) 장원급제*의 성과는 고려말 사대부들의 자랑이었다. 그는 타고난 학자였고, 시인이었으며, 스승이었다. 전시 장원의 업적을 가지고 고려에 돌아와 그는 젊은 나이부터 우리나라의 훌륭한 인재들을 위해 강론했고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최치원이 통일신라 때 당나라에서 장원급제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빈공과(賓貢科)로서 외국인 특병전형 시험이었다. 전시는 우리의 과거시험과 같이 한족을 포함하는 주 시험이다.그는 1차 회시 장원, 2차 전시(황제 앞에서 치는 최종시험)에서도 1등 했지만
원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2등을 받았다.
사실 우리는 안다. 학문과 인품이 뛰어나다고 정치에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저 옛날은 지금보다 학문과 정치 사이의 관계가 더욱 가까웠지만 그는 애당초 정치적 감각을 타고난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변수보다는 상수를 선호하는 인간이었고, 냉혹함보다는 온정으로 사람을 대하는 인물이었다. 그에게 정치 세계는 학문 세계와 동떨어진 먼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불교 경전을 즐겨 읽는 임금에게 일과가 아닌 때에 불법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은 괜찮다고 말했다. 조선을 건국한 제자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스승은 절의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색은 저 시의 끝 구절처럼 학문의 큰 스승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랐을 뿐이다. 이색의 입장에서 오히려 제자들이 가혹하고 안타깝게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는 아들 이종학이 정도전에게 죽임을 당했을 때 그 소식을 집에서 전해 듣고 울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직접 배웅하겠다며 말을 달려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야 큰 소리로 울었다. 자기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연좌로 엮어 죽이거나 혹은 죽어가는 제자들을 바라보며 그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지도 못했다.
**송나라 시대의 위대한 유학자. 도학의 창시자이며 성리학의 종조 주희(朱熹)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주자는 두 명이 있는데, 주희를 주자(朱子)라 부르고, 주돈이를 주자(周子)라고 부른다.
빽빽하게 들어찬 저 깊은 산속에 들어가면 하늘도 보이지 않는다. 그 숲은 너무 험하고 높아 날아서 넘을 수도 없다. 안에서도 길이 보이지 않고, 밖에서도 방안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마주하며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이색은 그 안에서 차를 마시며 스스로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은 걸까. 반곡(盤谷)은 한유의 시에 나오는 장소다. 이원이라는 친구를 배웅하며 나누는 이야기 속의 배경인데 대장부의 삶을 꿈꾸지만 꿈만으로 만족해야 했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다. 실력이 있어도 운이 따르지 않거나, 운이 따라도 역량이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이룰 수 없는 것이 대장부의 삶이고, 그렇다면 차라리 필부의 파리 목숨보다 반곡에서 은거하며 유유자적 사는 삶에 뜻과 의미를 두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한유는 결국 서울로 올라가 재상이 되었다. 한유에게 반곡은 낙원이라기보다 도피처에 가까운 곳이다. 이색이 그걸 몰랐을 리는 없을 테니 이 차시는 결국 묘한 분위기가 되고 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족쇄에 묶인 삶에서 우리는 자유를 구할 수 있을까. 차라리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그때 이것이 아니라 저것을 선택했다면 하는 마음으로 여생을 살아야 하는 후회 가득한 삶에서 우리는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이색이 마셨다는 저 맑고 맛 좋은 샘물로 끓인 차가 얼마나 쓴맛이었을지*** 당신은 상상이 가는가.
***이름난 명차는 고차(苦茶)라 했으니 쓴맛을 잘 살려야 훌륭한 차다.
정 다 인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