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다 보듬이 01 : 숲새미보듬이
땅속으로 깊이 넣어 한 삽, 두 삽 빼곡히 뒤집어 놓은 밭에 괭이로 흙덩어리를 두들긴다. 흙을 고르고 이랑을 쳐서 유월 본디 씨를 넣는다. 하루 이틀 비가 오고 볕이 쏟아지면 잡초가 먼저 들썩거린다. 긁개로 긁어내다, 호미로 쪼아대다 오전을 다 보내고 나니 슬그머니 낮잠이 고프다.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이내 소파에 기댄 채로 스르륵 졸음에 녹아든다.
낯선 숲에 나는 서 있다. 키 큰 나무 사이로 겨우살이덩굴이며 가시넝쿨, 산딸기 수풀이 얼기설기 이어진다. 고개를 드니 새파란 하늘이 하도 밝아 곧게 뻗은 나무들이 검푸르다.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사각사각 풀 밟히는 소리. 멀리서 휘파람새 소리, 연이어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참개구리 소리도 나지막이 들린다. 해 묵은 잎들이 삭고 그 위로 새싹이 보송하게 솟았다. 철 갈이 하는 나무껍질과 이제 막 피어나는 봄꽃의 향기는 물기 머금은 촉촉한 바람결에 실린다.
숲길을 걷는 걸음이 상쾌하다. 걷다 보니 저만치 잔잔히 물소리가 들린다. 물 흐르는 소리가 가까워지자 옅은 물안개도 보드라이 퍼져온다. 안개가 피어날수록 숲은 빛을 숨긴다. 문득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니 여전히 파랗다. 안개는 곧 걷히겠구나. 나는 안개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물가에 다다르니 맑디맑은 물 위로 비치는 내 모습이 안개에 가렸다, 이내 드러난다. 한참을 보고 있으니 그 안에 무언가 아른거린다. 신비롭고 궁금한 마음에 조금 더 다가가 허리를 숙이는 찰나, 나는 꿈에서 깬다.
하얀 구름이 듬성듬성 흘러가는 볕 좋은 맑은 날이다. 짧은 낮잠이 어찌나 단지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다. 물속으로 보이던 그건 뭐였을까. 잠시 궁금하다, 문득 틀리지 않을 예감이 든다. 아침 물안개는 곧 걷히고, 조그만 숲속 동물들은 물가로 와 목을 축일 것이다. 햇살은 숲속 어디에나 내려와 나무와 풀 잎사귀 여기저기에서 반짝이겠지. 그렇게 그날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밝을 것이리라.
답이 흐릿해서 묵히고 있던 글을 새로 써보아야겠다. 담으려 한 마음은 고개 들어 보았던 파란 하늘처럼 선명하니까. 숲을 산책하듯 써 내려가야지. 마침표를 찍고서, 차를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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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새미에 아기 산토끼가 차 마시러 왔다. 뭐가 보이니?
숲새미가 어우러진 찻자리 풍경. 보듬이는 저만치 올려두고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찻자리에 내려 쥐고 쓰다듬고 건넬 때 한층 근사하다. 달마다 보듬이 한 점. 곁에 두고 매일 차 마시고 자주 매만지며 떠오르는 느낌을 펼쳐내어 보는 건 어떨까. 아름다운 것을 읽어내는 힘은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만들어진다.
2021년 4월, 청명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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