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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RollingTea 구르다

천 개의 공


보듬이의 새로운 여행 : 심재용 작가를 만나다






작업대 위에 흙을 뭉쳐 만든 덩어리 하나가 있다. 크고 두툼한 손바닥 위에서 구백 그램의 흙 반죽은 점차 동그란 모양을 잡아가며 안에 남아 있던 잔 숨을 뱉고 주름을 벗는다. 어미 새가 알을 까기 위해 둥지를 짓듯 흙덩어리를 단단히 뭉친다. 여물어진 흙 공의 가운데를 엄지로 눌러 깊숙이 구멍을 낸다. 구멍을 넓히듯이 조금씩 돌려가며 겉과 안을 손가락으로 마사지하듯 누르고 두드린다. 한 바퀴가 돌아가고, 두 바퀴가 돌아가고, 열 바퀴가 수십 바퀴가 되면서 우둘투둘한 표면은 점차 미세한 곡선들이 잇닿은 듯 잔물결처럼 고요해진다. 손가락만큼 두껍던 흙벽 두께도 점점 얇아진다. 내려앉았던 배의 기울기는 점차 봉긋하게 솟아오르며 기세가 살아난다. 손빚음 보듬이다.





작가 심재용은 손으로만 보듬이를 빚는다. 십여 년 전까지 ‘손빚음’은 없던 말이다. 당신이 만약 도예과에 들어간 신입생이라면, 혹은 동네 도자기 공방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이라면, 가장 먼저 핀칭(pinching)을 배울 것이다. 서양에서는 물레를 쓰지 않고 손으로 만든 흙 그릇을 핀치팟(pinch-pot)이라고 부른다. 핀치팟을 만드는 기술이 핀칭이다. 도자기가 동양의 전유물이었던 수 천년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모두가 외래어로 도자기 용어를 가르치고 부른다. ‘손빚음’은 물레 없이 손으로 흙을 주물러 그릇을 만드는 일에 붙인 우리말 이름이다. 정동주 선생은 심재용 작가에게 손 ‘手’에 하늘 ‘天’을 붙인 호를 선물했다. 이름답게 심재용 작가는 ‘손빚음 보듬이’를 만드는 일에 도예가로서 삶을 온전히 받쳐왔다.


정동주 선생을 처음 만날 무렵, 심재용 작가는 대학에서 도예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당시 보듬이를 실험하고 연습하던 작가들은 몇 안 되었지만, 모두가 노련한 고수였다. 고(故) 우송 김대희 선생이 초석을 닦고 있었고, 연파 신현철 작가가 있었다. 청마 유태근 작가와 심산 김종훈 작가가 있었다. 나머지 여럿 더 있었지만, 대부분이 몇 해도 채 채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얄궂게도 스승은 가장 나이 어린 심재용 작가에게 물레를 버리고 손으로 보듬이를 만들어 보라 권했다.

심재용 작가는 전문가로서 학교에서 가르치며 직접 물레 차는 작가였다. 무수한 공모전에 참가하며 다양한 주제에 맞춰 흙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업에도 능숙했다. 그 모든 지식과 기술이 보듬이를 직접 손으로 빚는 데는 답이 되지 못했다. 핀칭으로 만들어 내는 그릇은 투박하고 묵직한 맛과 질감이 특징이다. 반면, 보듬이는 찻그릇이다. 게다가 참고할 수 있는 답안이 없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찻그릇이다. 찻그릇은 기본적으로 사용하기에 알맞게 가볍고 쓰임에 맞게 섬세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름다워야 옳다. 보듬이는 바닥에서 전으로 이어지는 선, 굽 없는 바닥과 입이 닿는 부분의 두께, 전체 무게와 크기까지 살피고 유념해야 할 점이 많다. 손가락으로 이 모든 조형 작업을 물레에 준하게 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말이 되지 않아 보였다. 언뜻 화도 났다. 얼기설기 빚은 보듬이 하나 만들 시간에 물레로 열 개 뚝딱 만드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런데도 심재용 작가는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연습을 쉬지 않았다. 작업대에 앞에 앉아 안 되는 것을 어째서 하라 하시는지 모르겠다며 오늘은 툴툴거려도 다음 날이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다시 작업실로 향했다. 가서 또 흙을 토닥거렸다. 작가는 자신이 학생 시절부터 배우고 가르친 이론과 실습을 떠올리며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단순하기 그지없어서 무시하고 지나쳤던 원칙들, 순서, 과정과 기법을 되짚어 나갔다. 어떤 날은 온종일 한 개의 보듬이 밖에 만들지 못할 때도 있었다. 스승은 그에게 천 개의 손빚음 보듬이를 만들라 했다. 그는 3년이 지나 그 말이 농담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그저 흔한 핀치팟이었던 것이 그즈음이 되자 온전한 보듬이가 되었다. 손이 큰 사람도 작은 사람도 저마다의 두 손에 쥐면 알맞게 안기는 보듬이였다.






보듬이 조형에 확신이 생기자 새로운 과제가 잇달았다. 잘 빚어 완성한 손빚음 보듬이에는 꾸미고 보태지 않은 매력이 있다. 그릇 몸을 만드는 사이 저절로 남은 손자국이다. 그릇 안팎에 찍힌 손자국은 서로 겹치어 무수히 많은 선과 면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빛의 각도와 양에 따라 변화무쌍한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손빚음 보듬이에 맞는 유약이 필요했다. 색이 화려하고 두터운 유약은 손빚음 그릇 고유의 굴곡과 자연스러움을 가리고 덮어버리기 일쑤였다. 스승은 그에게 세 가지 천연 유약 만드는 법을 일러주었다. 그 가르침을 토대로 연구 끝에 완성한 세 가지 유약은 물처럼 묽게 사용하면 손빚음 특유의 조형미를 돋보이게 해주었다. 심재용 작가의 보듬이가 고대의 토기나 유약을 바르지 않은 그릇, 때때로 흙이 아닌 나무나 암석 같이 보이는 까닭이다.



한 단계씩 계단을 오르듯, 손빚음 성형과 유약에 대한 실험에 답을 찾아왔지만, 심재용 작가의 손에 들린 숙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보듬이에 무엇을 담아 완성할 것인가. 보듬이는 지난 역사를 굳건히 딛고 이 시대에 태어난 찻그릇이다. 보듬이를 빚는 작가는 우리가 사는 시대의 얼굴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스승은 말한다. 그저 보기 좋은 것, 싸서 좋다거나 비싸서 가치 있다는 것이 보듬이의 개성이 될 수 없다. 둥그런 모양새를 따라 만든다고 모두 보듬이 작가가 될 수도 없다. 보듬이와 보듬이 빚는 이의 정체성은 역사와 삶을 관통하는 태도에 있다.


작가는 손빚음 보듬이 작업을 시작한 이후부터 오늘까지 자신의 삶을 온전히 그 작업에 쏟아부었다. 매일 보듬이를 만드는 일은 그날의 일기를 쓰고 여행을 기록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작가는 보듬이의 삶의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가족끼리 떠났던 경주 여행에서 보았던 남산의 부처님 얼굴, 딸과의 이야기에서 떠올렸던 어느 소녀의 낯, 위안부 피해자들의 저고리, 마스크를 낀 오늘 우리 이웃을 보듬이에 새겨 넣었다. 얼굴이겠거니 했던 것에서 보다 또렷한 이목구비로 나아갔다. 점점 이미지는 구체화하고 묘사는 세밀해졌다. 때때로 섬세한 묘사가 하도 정밀해서 나무를 깎아 만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멈춰 섰다. 처음 손빚음 조형을 위해 기울였던 육체적인 고단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벽이 느껴지는 듯했다.




작업실 큰 벽을 가득 채운 보듬이 작업 메모. 수천 작가의 열정과 꿈을 슬쩍 엿볼 수 있다.

십 년의 보듬이 작업에서 첫 세 해가 조형을 위한 분투였다면, 지난 몇 해 간의 과제는 표현 방식에 있었다. 기예에 가깝게 정밀히 묘사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사실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의 정반대에 가깝다. 작가는 언젠가 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덜어낼 수 있고 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그는 작업하며 그 순간을 기다린다. 침착하고 우직한 성품이 지금의 손빚음을 가능하게 했듯이, 작가는 앞으로 다시 수백 개의 흙덩이를 뭉치고 보듬이를 빚으며 연습할 각오가 되어 있다. 어렵지만 성실하게 자신만의 보듬이 선을 얻었듯, 생각과 고민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그리다 보면 언젠가 보일 듯 말 듯 한 이미지와 색의 세계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믿는다. 그것은 추상과 은유의 세계일 것이다.

차인이라는 말이 흔한 시대지만, 무릇 차인이란 차를 통해 삶을 통찰할 줄 아는 사람이다. 찻그릇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더욱이 보듬이 작가라면 매일 흙을 쥐고 찻그릇을 만들며 자신의 세계를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단련된 힘으로 지혜를 길어 범인이 보지 못한 아름다움의 세계를 열어주는 사람이어야 할 거다. 치열하고 고단한 과정을 스스로 감내하며 단련해 온 손끝에서 만들어진 아름다움에는 반대로 시끄럽고 시시콜콜한 정보들이 스며들 틈이 없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아름다움이 은근히 녹아들어 사람들은 한 점 그릇에서 제각각의 영감을 얻는다. 수만 가지 이미지와 이야기로 가득 차 있되, 눈으로 보기에는 텅 비어 있는 그림. 그런 그림이 편안히 내려앉은 보듬이라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202007


가슬가슬한 보듬이의 표면은 손가락 자국이 보일락 말락 하다. 유약은 바른 듯 바르지 않은 듯하다. 빛이 손자국에 내려앉았다 서두르지 말고 조금 더 머물다 가라 한다. 몸흙 위로 흩뿌려진 서로 다른 흙이 물감을 대신하고 있다. 바다 위로 뉘엿이 지는 해를 가리는 저녁 안개, 오후 두 시 정오를 지나 정수리를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 대신 불청객처럼 찾아드는 소나기구름, 뜨는 해를 보러 오른 새벽 산에서 마주한 아침노을. 단지 흙을 흩뿌려 그린 저 그림에서 당신을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 올여름은 유난히 비가 잦다. 때늦게 시작한 장마가 지루하더니 어느새 걱정으로 바뀐다. 올 한해 절반을 훌쩍 넘기도록 코로나가 일상을 특별하고 유난스러운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우리의 마음도 좀처럼 개지 않는다. 그런 날에도 작가는 다섯 시면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며 작업실로 발길을 옮긴다. 입추니까 저만치 왔겠건만 코빼기도 안 보이는 가을을 앞두고, 이 지난한 여름을 기억하며 보듬이에 이름을 붙인다. 202007. 시대를 담고, 시절을 담고, 얼굴이 담긴 보듬이를 오랜만에 만나 모처럼 기분 맑은 하루다.






여름 끝자락, 심재용 작가. 2020년 7월의 하늘을 담은 보듬이를 손에 쥐고.



작업실에서 내다보이는 하늘.









+ 구미 수천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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