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듬이의 새로운 여행 : 유태근 작가를 만나다, 下
보듬이 작업장 옆 건물에는 이 층으로 된 대형 공방이 있다. 1층에는 성인 남자가 족히 들어갈 법한 큰 옹기 작업을 하는 물레와 가마가 있다. 2층은 회화 작업을 하는 공간이다. 시선이 문득 머물곤 하는 한가로움도 경계하기 위해 창문을 모두 없애버렸다. 어른 키만 한 화폭을 짙거나 옅은 먹색, 붉거나 푸른 단색 붓질로 풍성하게 채운다.
나는 문득 유태근 작가의 이십 대 첫 공모전 입상 후 어느 밤 이야기를 떠올린다. 시골에서 태어나 흙 외에는 장난감이 없던 소년은 대학을 들어가서도 흙만 만지고 살았다. 도예가로서 처음 받는 상이라 관례를 알지 못해 어리벙벙했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고(故) 조성묵 작가의 초대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날, 조성묵 작가의 서재에 가득 차 있는 미술 서적들은 깜깜한 밤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던 청년의 삶에 은하수처럼 빛나는 경험을 선물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 일본 유학을 결심하고, 무작정 덤비고, 깨지고, 배우고, 다시 깨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거듭했다. 그는 안온하게 멈춰 서는 법이 없이 스스로 길을 내며 지금에 이르렀다.
유태근 작가는 한 가지 작업이 끝나면 한동안은 같은 작업을 반복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루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열의가 바닥날 만큼 한 작업에 모두 쏟아 붓고 손을 멈춘다. 완전히 새로운 도전을 한다. 어떤 작업은 한 해, 어떤 작업은 서너 해에 걸쳐 이어지지만, 새로운 시도는 멈춘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아예 지난 작업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옛 작업물은 늘 눈이 닿는 곁에 둔다. 어떤 날은 무심결에 보고, 어떤 날은 처음 본 것처럼 찬찬히 살핀다. 그러다 어느 날은 예전에 보이지 않았던 걸 발견하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
한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넘어가는 일이 매번 무난하고 계획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막막함에서 출발하는 일이 많다. 그는 막막할수록 먹을 갈아 일기를 쓰고 흙을 만진다. 차를 마시며 밖으로 시선을 돌려보고 관찰한다. 붓으로 쓴 일기가 키보다 높이 쌓이는 만큼, 먹과 붓을 쓰는 일에 자유로워진다. 문득 밋밋한 보듬이 겉면에 글귀를 써본다. 작업실 창가에 맺은 포도송이도 그려 넣어 본다. 그러다 보듬이의 애매한 선이 그날따라 유독 마음에 든다 싶으면 더 큰 보듬이도 작업해 본다. 그 선형이 손끝에 온전히 맴돌기 시작해 달항아리 작업을 시작하고, 더 큰 옹기에도 의욕을 내 본다. 옹기 작업이 한 번 끝나고 나면 도대체 내가 이걸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고무된다. 그 힘으로 더 큰 화폭에 그림을 그려 넣는다. 무언가 후련해지고 나면 다시 그릇 작업으로 되돌아간다.
보듬이는 굽이 없는 만큼 바닥의 힘이 중요하다. 바닥이 튼튼하지 않으면 보듬이는 무너질 것이고, 튼튼하기만 하면 바닥의 사방을 타고 올라가는 선들이 꾀죄죄해져 볼품이 없어질 것이다. 유태근 작가의 모든 작품에서 대수롭지 않은 듯 뿜어져 나오는 미려한 선들의 이면에는 삼십 년 넘게 이어진 백만 번의 반복이 있다. 그가 만든 모든 아름다운 것들의 바탕에는 흙투성이 청년이 붓을 쥔 중년이 되기까지 끊어진 적 없는 건강한 성실함이 있다.
전통과 파격, 일상과 모험을 넘나드는 작가는 말한다.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다고. 다음이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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