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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RollingTea 구르다

破格, 굽을 떼어내다


보듬이의 새로운 여행 : 유태근 작가를 만나다, 中





흙이 유태근 작가 세계의 한 축이라면, 나머지 한 축은 새로운 것을 향한 도전이다. 그 맨 앞에 보듬이가 있다. 보듬이는 이 시대에 태어난 한국 고유의 그릇이다. 굽이 없는 보듬이를 완성하는 작업은 전통 도예가 답습해온 틀을 깨는 작업이다.


전통 도예에서 찻그릇에 굽을 만들어 완성하는 일은 당연한 작업이었다. 예로부터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그 이상 그 의미를 탐구하는 일은 없었다. 보듬이 창안자 정동주 선생은 그릇의 굽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고대 제례에서 사용하던 제기(祭器)에서 읽어낼 수 있듯, 신성을 향한 열망으로 굽은 높이 세워졌다. 백성들의 두 발처럼 땅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 가까이에 닿아 있어 땅을 지배하는 힘을 얻고자 했다. 신에게 올리는 그릇은 차차 왕의 그릇이 되고 귀족과 부유한 이의 그릇이 된다. 그릇의 높은 굽은 부와 권력을 상징하게 되었다. 물론 굽은 그릇의 쓰임새를 좋게 하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찻그릇은 단지 기능만을 따져 쓰는 물건이 아니다. 차가 그러하듯, 찻그릇 역시 바른 생각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한 채 답습한 의례나 습관, 편협한 생각, 허울뿐인 장식을 떼어내듯이 찻그릇의 굽을 떼어내고 보듬이가 태어났다. 선사시대 이후 도예 역사에서 처음으로 굽이 떨어져 나갔다.







유태근 작가는 전통 도자 전공자로서 대학 강단에서 17년의 세월을 보내고, 수많은 학생을 가르쳤다. 35년 세월 동안 당연히 반복해온 작업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40~100g 무게의 흙으로 남들보다 더 크고 얇고 심지어 비정형인 보듬이를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굽을 떼어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굽이 없을 때 자신이 원하는 선을 구현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도 저도 아닌 그런 선이 필요했다.


그릇의 굽은 도예가에게 큰 폭의 자유를 허락한다. 아래에서 굽이 중심을 넓게 잡아주기 때문에 전에서 배로, 배에서 굽으로 떨어지는 선을 퍼지게 하거나 좁혀 나갈 수 있다. 굽을 떼어내도 그릇은 넘어지지 않아야 하고, 굽 없어도 아름다워야 했다. 유태근 작가는 답을 찾느라 실험을 거듭해왔다. 큰 두 손에 가득 찰 만큼 크지만 가벼운 보듬이. 너른 전과 좁고 두툼한 바닥을 잇는 길게 흘러내리는 선. 그 선이 이제 유태근 작가만의 보듬이 선으로 자리 잡았다. 십 년 가까운 시간이다.


고대를 거쳐 내려온 묵은 흙, 옛사람으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 도자의 손기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단계를 거쳐 쌓아 올린 방법론이 한데 모인다. 거기에 일상의 풍경이 살짝 더해진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의 조각들이 서로 얽혀 파격이 되고 절묘하게 균형을 잡는다.



작가는 직접 보듬이 한 점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흙 한 덩어리를 쥐고 물레에 앉는다. 십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쌓고 길어 올려서 구멍을 내고 넓히고 모양을 잡은 다음 선을 다듬으면 끝이다. 그릇 표면은 손대면 찰랑거리며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얇지만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 쓸데없이 반복하는 손놀림이 없다. 잠깐의 망설임도 없다. 매끈하게 이어진 듯, 끊임 없이 변하는 순간의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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