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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본 듯한 저 빛깔. 16세기 일본 무로 마치 신궁 차회 이목을 한 몸에 받은 송나라 영청백자다완, 어쩌면 조선 등잔의 몸, 아니면 무명적삼 삶고 빨아 낡고 바랜 슬픔 깃든 어디 무언가. 높은 곳에도 있을 법하고, 낮은 곳에도 있을 법한 묘한 걸음걸이다."

​정 동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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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용_새뜻밝보듬이.JPG

정 갑 용

​새뜻밝보듬이

2019

Idea of Bodeumee

작업하면서 무엇에 집중하고 생각하는 편인가?

작업을 하다 보면 "왜?"라는 물음보다는 "어떻게?"라는 생각이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부족한 나에게 지금 주어진 것들로 어떻게 만들까, 좁은 내 눈으로 보이는 것들로 어떻게 생각을 전개해야 할까. 그 질문들을 단순한 작업 방법에 그치지 않고 더 확장해 적용하고 생각해보려 노력한다.

 

보듬이 작업에 관해 앞으로의 방향은 어떻게 되는가?

보듬이는 현대의 예술이다. 보듬이는 그릇이기 때문에 기능적인 면을 포기할 수 없지만 동시에 작업에서 근본이 되는 미적인 아름다움을 최대한 끌어내려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의미와 의의 면에서 보듬이는 조선 이후 처음 등장하는 오롯한 우리 그릇이기에 탄생에 얽힌 정신이나 미학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우선 나는 이 새롭고 놀라운 그릇을 알아가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보듬이 작업에 관한 고민이 있다면 무엇인가?

보듬이에 담긴 정신은 기본적으로 수평으로 임하는 마음에 있다는 점에 감동했다. 창안자인 평강 선생님과 그의 제자들은 모두 같은 평자 돌림으로 호를 쓴다. 호에 관한 옛 규율이 한 대를 지날 때마다 서로 다른 돌림자를 써 위계를 구분했던 것과 반대다. 보듬이는 굽이 없다. 같은 맥락이다. 계급은 사라졌지만, 계층은 심화하고 있는 현대의 우리 사회에서 보듬이가 던지는 울림이 크다. 이것을 작업으로 녹여내는 일 자체가 어떻게 고민이 아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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